책으로 여는 새벽

삶을 걸고 이겨낸 성장통 -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2013)

리브래리언 2014. 1. 5. 01:06

무라카미 하루키... 나에게 어느 광고에서 봤던 "노르웨이 숲"이란 책의 저자로만 기억되어있는 사람이다. 온갖 실용서에 빠져서 문학을 멀리했던 시기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이가 되서야 사춘기를 맞은 청소년처럼 소설에 다시 빠져들고 있는데, 그냥 아는 작가였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웅덩이에 던져진 돌맹이마냥 큰 파장을 주었다. 그 책은 2013년 초반, 국내 서점가를 흔들었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이다. 



시작은 다자키 쓰쿠루가 죽음을 체험하는 시점부터 시작이 된다. 그가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대학생 때, 고교시절 함께 어울렸던 친구들 그룹에서 추방당하고 나서이다. 마침내 그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 돌아오지만,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산다. 그리고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어느 덧 16년의 시간이 지나고, 다자키는 2살 연상의 사라를 만난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으로 다가가던 중에, 사라는 다자키로부터 뭔가 어색함을 느끼고, 대화를 하던 중에 친구들과의 사건을 알게 된다. 사라는 다자키에게 그 어색함을 풀기 위해서는 친구들을 만나보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을 하고, 그 역시도 자신만의 답답함을 해소할 필요성을 느껴서 친구들을 만나러 가게 된다.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던 다자키는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지만, 그 이면에 자신이 모르는 친구들의 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라에 대한 마음도 확인하게 된다. 



색체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는 다자키 쓰쿠루라는 인물이 마음의 안식처를 잃고서 방황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과정은 마치 종교인들이 그들의 원류를 찾아 성지순례를 가는 것에 비유할만 하다. 


우선은 다자키 쓰쿠루는 죽음에 대한 남다른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친구들 그룹에서 추방당했다는 그 사건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이었고, 유일했던  보금자리를 상실했다는 아픔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힘겹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하이다라는 2년 연하의 친구를 통해서 죽음에 대한 다른 견해를 듣게 된다. 물론 자신은 그 느낌을 충실히 온몸으로 경험했지만, 하이다가 얘기하는 죽음의 권리 이전과 그에 따른 도약은 외부에 큰 동요가 없는 다자키에게 조차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다자키 쓰쿠루는 사라의 제안으로 친구들을 한 명씩 만나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그가 알게된 사실보다 더 나를 놀라게 했던건 다자키 쓰쿠루를 생각하는 친구들의 견해였다. 그들은 다자키가 그들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친절하게 이 부분을 책의 후반부에 설명해준다. 


"아니, 그런게 아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넌 있는 것만으로 우리가 자연스럽게 우리로서 거기 있을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었어. 넌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두 다리로 지면을 굳게 딛고 서서 우리 그룹에게 평온한 안정감 같은 걸 줬던 거야. 배의 닻처럼. 네가 떠나면서 우리는 새삼 그걸 실감했어. 우리한테는 역시 너라는 존재가 필요했다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떠난 이후로 우리는 갑자기 흩어지기 시작했어." p203


"혹시 네가 텅 빈 그릇이라 해도 그거면 충분하잖아. 만약에 그렇다 해도 넌 정말 멋진,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그릇이야.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그런 건 사실 아무도 모르는 거야.(중략)" p381


and p387


소설에 사용되는 많은 소도구들 - 리스트의 "순례의 해", 그릇, 육손, 철도역 등의 얼개가 잘 맞아서 재미있고, 잘 읽힌다. 후반부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아노 코드 알려주듯, 그 의미를 한 음 한 음 짚어주기에 앞서 이해했다면 약간 느슨함을 느낄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다자키 쓰쿠루가 친구들을 만나는 동안 숨가쁘게 좇았던 나를 생각하면 나름 친절한 휴식시간이란 생각도 든다. 그 중에서도 정말 마음에 드는 건 JR신주쿠 역에 대한 묘사이다. 

지금까지 굉장히 특별하게 벌여놓았던 다자키 쓰쿠루의 사건들을 그냥 일상으로 돌려보내기에 그만한 소품도 없겠다 느낄 정도 였다. 


기사는 '일본은 분명 유복할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일본인은 이처럼 고개를 숙인 불행한 모습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사진은 유명해졌다.

많은 일본인이 실제로 불행한지 아닌지, 쓰쿠루는 잘 모른다. 그러나 혼잡한 아침 시간 신주쿠 역에서 계단을 내려가는 통근객이 하나같이 아래를 내려다보는 진짜 이유는 불행해서가 아니라 발아래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계단을 헛디디지 않도록, 구두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러시아워의 거대한 철도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과제이다. p412


이전까지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몰랐지만, 이제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재미있는 건 얼마전에 재밌게 읽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도 일면 통하는 부분이 있다. 오래된 친구를 찾아나서는 것이나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결말 그리고 그 결말까지 이끌어가는 두 작가의 힘이 정말 놀랍다. 


이 책은 빨간책방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 알게 되어 읽었다. 그 팟캐스트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힘은 "성실함"이라고 했다. 마치 다자키 쓰쿠루 처럼 - 이 말의 의미도 책의 말미에 있으니 꼭 일독을 권한다. 

세상에 스스로가 색채가 없거나 혹은 옅거나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러하다고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다. 색채가 모든 것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아닐까? 결국 다자키 쓰쿠루도 색채는 없지만 그의 이름처럼 그룹을 만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어지는 동영상은 리스트의 순례의 해 중에서 La Mal Du Pays - Lazar Bermans 의 연주로 감상해보자.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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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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