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개월 쯤 전에 회사 선배와 술을 마실 기회가 있었다. 이런 저런 얘기하다가 집을 산 얘기가 나왔는데, 어떻게 장만했건 간에 내 집에 간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다. 난 늘 집에 가는 복도가 좋다. 말했더니 그 선배도 "나도 처음 집 샀을 때, 그런 기분이었다." 라고 말해주었다. 힘들게 구한 집이니 앞으로도 열심히 살라는 말처럼 들려 격려가 되었다.
올해는 이 뿐만 아니라 많은 일신상의 변화가 있었다. 그런 것들 중에 나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 경험도 있으니, "춘천 마라톤 풀코스 완주"도 그 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달려보고나서야 확실하게 알았다. 왜 인생을 마라톤 풀코스에 빗대어 얘기하는 지를 말이다.
사람이 하는 대부분의 일은 시작과 끝이 명확한 편이다.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나 아닌 사람들과의 소통도 어려워지고, 뭔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그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확고한 비전과 정확한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안정감을 찾으려고 한다. 그건 인생에서나 일에서나 마찬가지 인다. 하지만 현실이 그러한가?
몇 날 며칠을 세워놓은 계획은 갑작스런 호출과 업무로 인해 침범당하고 늦어지기 일수고, 정말 제 때 시작하는 것 조차 불확실한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렇다 그것이 현실이다.
마라톤은 보통 인생에 비유되지만, 그 자체를 하나의 프로젝트로 보더라고 유사점은 굉장히 많다. 마라톤이 인생에 비유되었을 때 맞지 않는 한가지가 있다. 바로 마라톤은 골인점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힘들어도 달려낼 수 있다. 허나 인생의 끝은 없다. 마라톤 중간에 주로가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해도 어차피 골인 지점은 출발선에서부터 42.195km 달려야 끝난다는 것을 알기에 계속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서 오르막이던 내리막을 만나면 얘기는 다르다. 그 변화의 끝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던 일신상의 변화를 경험하면서 나를 새로 발견하기도 했지만, 새롭게 발견한 나에 대한 댓가는 아직까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한 내가 삶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때까지는 걸리는 시간은 댓가보다 더 계산이 되지를 않는다. 그래도 댓가는 몰라도 일은 해야하고 그렇게 되어야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변화와 어리석은 행동들이 명분을 갖게 된다.
운동을 하며 내 몸에 대해서 신기함을 느낀 적이 있었다. 바로 내가 대회를 출전하겠다 마음을 갖고 잠이 들면, 다음 날 아침, 몸은 이미 달릴 상태로 준비가 되는 것이다. 생활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지금 나에게 변화가 있다는 것은 앞으로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내 몸은 이미 그 도전을 위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험상 대부분 잘 된다.
'emotional inside'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한강을 따라, 사람을 따라 - 아싸아리 6코스 단양 & 청풍 (0) | 2016.05.12 |
|---|---|
| 열심 (0) | 2015.02.25 |
| 정리 - 대지가 나무에 뿌리를 내리는 시간 (0) | 2014.11.20 |
| 일부러 하는 것. (0) | 2014.11.17 |
| 나란 남자.. (0) | 2014.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