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otional inside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

리브래리언 2012. 12. 4. 01:22

사회 생활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의 일이다. 회사에서 남직원 A를 뽑은지 얼마 안되서, 같은 직장에 있던 여직원 B를 함께 데려왔었다. 동종업계인데다 A의 추천도 한 몫했다. 근데 이 B의 행동이 변하면서 A가 많이 힘들어졌다. 전 직장에서는 "선배, 선배" 하면서 따르던 B가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A보다 여선배들과 빨리 A를 외면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A는 나에게 찾아와 여러가지로 하소연을 했는데, 업무가 다른 나로서는 그저 그를 위로하는 것 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특별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A는 결국 퇴사하고 말았다.

너무 오래 전 이야기라 구체적으로 A와 했던 이야기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난 실천하지도 못하는 "남자라면~"류의 멋진 말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한다. 어디서 듣거나 읽었을 것이고, 혹은 내 머리에서 나왔을 아주 이상적인 이야기들. 지금 생각하면 그 말들은 A에게는 위로나 격려보다는 또다른 부담과 족쇄가 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 대부분의 직장은 남성비가 우월하지만, 성비와 관계없이 여성의 지위가 높은 회사가 있고, 그런 회사에서 내향적인 남성이 자리 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그에게 마초적인 이상향만을 읊어주었으니 나도 참 어리석은 선배였고, 그도 그렇게 생각했으리라.

매일 경제 12월 3일 :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799922 - 이직 실패 사례 중...


지금이라고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다. 난 여전히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착한 사람이고,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말들이 내가 직접 해본 경험에 따라 말을 하고 있다는 것 뿐이다. 허나 가끔 머리로 지어낸 말을 할 때는 유난히 티가 많이 난다. 누군가의 잘못을 감싸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때는 특히 심하다는 것이 요즘 들어 여러가지 정황증거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심리학에서도 생각과 말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표정으로 드러난다고 하지만, 난 유난히 심한 사람이 아닌가 싶다.

오늘도 말로 번뇌를 만든 날 중 하나가 되었다. 이는 나를 믿어주는 사람에 대한 신뢰에 생채기를 내었으며, 나의 자존감을 흔들었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좋은 사람은 항상 좋은 것은 아닐 것이고,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나를 믿을 때는 그 만큼의 경험에 따른 것일 텐데, 난 무엇을 위해서 그런 말들을 한 것인지... 천냥빚을 갚을 수 있는 말은 내가 나를 방어할 수 있을 만큼 준비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댓가 큰 고민을 하나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