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우에든 운명이라고 하는 것은 끊임없이 진로를 바꿔가는 국지적인 모래 폭풍과 비슷하지. 너는 그 폭풍을 피하려고 도망치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면 폭풍도 피하려고 네 도주로의 방향을 바꾸어버린다. (중략) 왜냐하면 그 폭풍은 어딘가 먼 곳에서 찾아온, 너와 아무 관계가 없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거야. 네 안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되. - p17, 해변의 카프카(상) 무라카미 하루키
사춘기, 국민윤리 교과에서는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설명되어있는 인간이란 동물이 2차 성징이라는 변화를 만나면서 만나게되는 격랑의 시기. 성인으로 넘어가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끊임없이 되묻고 확립하려는 시기. 한자로 思春期는 "생각의 봄"이라 읽으면 이제 스스로 의지를 꽃피우는 시기라고 해석할 수 있지만, 읽기에 따라서는 "봄을 생각하는 시기" 즉, 마음이 콩밭에 가있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다. 어떻게 말하더라도 사춘기는 옆에서 쳐다보는 사람도, 겪는 당사자도 설명하기 어려운 시기임에는 틀림없다.
"호밀밭의 파수꾼"의 홀든 콜필드는 스스로 수준이 높고 지적인 대화를 즐길 줄 안다고 믿는 반면에 사회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자신과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룸메이트가 자신이 호감을 갖고 만났던 여학생과 시간을 보냈다는 것에 격분하여 다툰다. 그러고는 새벽에 학교를 외면하듯 나오게 된다. 이 소설은 홀든의 학교를 나온 뒤 3일동안의 행적을 적은 것이다.
여러가지 이유로 홀든은 많은 것들을 싫어한다. 지저분하고 수준이하의 학생들이 가득찬 학교부터 시작해서, 가식적인 연기때문에 연극보다는 영화가 싫고, 잘해주지만 진통제 냄새가 나는 선생님도 싫고, 뚱뚱하면 뚱뚱해서 싫고, 마르면 말라서 싫고, 다 싫어한다. 간혹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고 실제로 그의 동생 앨런과 피비에 대해서는 무한에 가까운 애정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에게 마음에 드는 것은 거의 없다.
"오빠는 모든 일을 다 싫어하는 거지?"
"아니야. 그렇지 않아. 그런 말 하지마. 왜 그렇게 말하는 거니?"
"오빠가 싫어하니까. 학교마다 싫다고 했잔항. 오빠가 싫어하는 건 백만 가지도 넘을 거야. 그렇지?"
(중략)
"그래, 대답해 줄게,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을 말하라는 거니, 아니면 약간이라도 좋아하는 걸 말하라는 거니?"
"진짜 좋아하는 것."
"좋아." 난 대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거였다.
p226
홀든 콜필드의 3일간의 이야기를 읽으며, 어린 시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돌아보다보니 그 시절 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후에도 알 수 없는 악감정을 가지고 살았던 날들도 생각이 났다. 상식 수준의 소통을 기대하고 했던 행동이나 말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았을 때, 특히 그러했다.
"이번에 다녔던 학교는 정말 최악이었어. 바보 천치들만 우글거리는 곳이었지. 지저분한 녀서들도 너무 많았어. 넌 아마 그렇게 더러운 녀석들을 본적이 없을 거다." p222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만, 놓치고 있는 관점 하나는 그 상식 수준의 기준이 "자신"이라는 것이고, 그것이 맹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간다는 것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 기준을 맞추는 것일 수 있다. "자신"만의 것이 소중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혼자만 가지고 있다면 원래의 의미보다 많이 퇴색되기 때문에 그 때, 그 때 속한 사회의 방식으로 소통이 필요하다. "읽히지 않은 글은 쓰여지지 않은 것과 같다."는 어느 작가의 말은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 공유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을 여실히 드러내는 말이다.
요즘 청소년과 관련된 이야기를 신문과 뉴스를 통해서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그것은 단지 획일화된 성적지상주의 뿐만 아니라 그 것을 위해 성인들이 고안해 놓은 방법들 때문이다. 그들도 청소년기에 그렇게 힘들어했던 입시 편향 교육에 대해서 벗어나기는 커녕 더욱 그 시스템에 최적화 되는 방법들을 기획하고 운영하여 돈을 벌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답은 정해져 있다. "어른들, 부모들의 욕심" 때문이다.
시스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을 개선하고 만들어갈 사람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이 알던 것과 다른 행동에 관심을 가져봐야 하겠다.
- 물고기들은 얼음 속에서 그냥 사는거요. 그게 물고기들의 법칙이오. 얼음이 얼어도, 겨울 내내 그 자리에서 그냥 지낸다는 거지. p114
- 망할 놈의 돈 같으니라구.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다. p154
- 아이들이란 항상 친구를 만나야 하기 마련이다. 정말 여기에는 이길 수 없다. p161
-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말아라. 말을 하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하니까. p279
호밀밭의 파수꾼
- 저자
-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 출판사
- 민음사 | 2009-01-20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샐린저를 단번에 세계적인 작가로 만들어준 [호밀밭의 파수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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