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새벽

500년 전 명장, 21세기에 되살려낸 명작, 칼의 노래 (김훈, 생각의 나무)

리브래리언 2015. 1. 20. 23:42

어느 덧 해가 바뀌고 누구도 닿지 않은 올해의 마음이 울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기대감이리라. 

내 마음의 울림이 크고 깊을 수록 누가 손을 댄다한들 그 소리를 멈출 수 있을까?



이순신 장군의 칼의 노래도 충심의 울음도 적군의 이동소리도 그렇게 멈출 수 없는 소리였을 터이다. 


칼자루에 감은 삼끈이 닳아서 반들거렸다. 살아서 칼을 잡던 자의 손아귀가 뚜렷한 굴곡으로 패어져 있었다. 수없이 베고 찌른, 피에 젖은 칼이었다. 나는 그 칼자루를 내 손으로 잡았다. 죽은 자의 손아귀가 내 손아귀에 느껴졌다. 죽은 자와 악수하는 느낌이었다. - p218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직하는 것으로 책은 시작한다. 이순신 장군의 상황은 이미 모진 고문을 통해서 부정한 적들에겐 질 수 없었고, 이긴다 한들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뭍으로 갈 수도 없는 그런 것이었다. 


내 끝나지 않은 운명에 대한 전율로 나는 몸을 떨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 통제사였다. (중략) 그러나 나의 무는 임금이 손댈 수 없는 곳에 건설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그 건설은 소멸되기 위한 건설이어야 마땅할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조정을 능멸하고 임금을 기만했다는 나의 죄는 유죄가 되어도 하는 수 없을 것이었다. - p41


내가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나에게 있을 것이었다. 임진년 개전 이래, 나는 그렇게 믿어왔따. 믿었다기보다는, 그렇기를 바랐다. (중략) 내가 함대를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을 때도, 적의 함대가 이동하면 잠든 나의 함대는 저절로 이동한 셈이었다. 바다에서 나는 늘 머물 곳이 없었고, 내가 몸 둘 곳 없어 뒤채이는 밤에도 내 고단한 함대는 곤히 잠들었다. - p35


복직 후 명량에서 적을 맞는다. 울돌목의 변화무쌍한 해류와 죽음을 각오한 투지를 발휘하여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바로 얼마전 영화로 나왔던 "명량"이 바로 이 이야기이다. 전투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긴장감은 영화보다 더 크고, 당장의 전투는 덤덤하게 그려졌다. 




명량 (2014)

Roaring Currents 
7.7
감독
김한민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김명곤, 진구
정보
액션, 드라마 | 한국 | 128 분 | 2014-07-30
글쓴이 평점  



이후 적들의 도발이 줄어들었다.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탈영, 축재 또는 태만과 같은 위법에 대해서 목을 쳐 본을 보이고, 그 중에도 백성과 군병을 독려하여 농사를 짓고 배를 건축하여 군량과 병력을 보충한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적과의 일전을 감지하는 그이다. 

명의 군대는 군세만으로 육군을 밀어내고, 수군은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죽음을 전해 들은 후에야 병력을 움직여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 통제영이 있는 목포로 온다. 그리고 얼마 후 노량해전이 시작된다.

김훈 작가의 글로 만나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은 그 무게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일차적으로 과거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를 볼 때도 느꼈던 감정인데, 단순히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서 거북선이 나온 것이 아니고, 이순신 장군이 일당백의 능력자여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차적으로 구차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적절한 비유와 가감없이 작가의 의중만을 전달하는 글에서 담백하고, 사실적인 어쩌면 다큐멘터리에서 받는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닥쳐올 싸움은 지나간 모든 싸움과 전혀 다른 낯선 싸움이었다. 싸움은 싸울수록 경험되지 않았고, 지나간 모든 싸움은 닥쳐올 모든 싸움 앞에서 무효였다. - p141

나는 고쳐쓴다. 나는 내 생물적 목숨의 끝장이 결국 두려웠다. (중략) 바다에서, 삶은 늘 죽음을 거스르고 죽음을 가로지르는 방식으로만 가능했따. 내어 줄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 p203

읽는 내내 나의 감상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새삼 깨달아갔다. 간혹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역사와 기록을 폄훼하는 입장을 많이 본다. 승자의 역사로 기록 되었기 때문에, 패자는 패배의 명분을 얻기 위해 실제보다 첨가된 부분이 있을 거라 예상하는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고 의견이니 논쟁은 외로 한다. 의견이 실제를 왜곡하고 판단을 흐리는 것은 옳지 않다. 정도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이순신 장군의 공은 높게 평가받을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얘기이다. 


칼의 노래라는 제목은 실은 칼의 울음이 아니었을까? 칼로 묘사되는 이순신 장군, 병사들, 제 역할을 못한 군신들 그리고 진짜 휘둘러 질 때 칼에서 나는 소리까지 모두 칼의 울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순신 장군은 면을 잃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운다. 병사들은 그저 그 고생으로 울고, 임금과 신하들은 그저 하늘의 운명이 야속하여 울고 울고 또 운다. 그리고 칼. 칼은 휘둘려지면서 울고, 피로써 눈물을 흘린다. 이런 많은 울음들을 그저 운다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으니 그저 노래라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 글의 제목으로 쓰려던 문장, "철기둥이 울면 손을 데어도 멈출 수 없다."
결국 이순신 장군도 혼자 울고, 혼자 이겨내었다. 자신의 칼로 직접 적을 베지는 않았지만, 피해를 줄이고 승리로 이끌기 위해 그는 그만의 이유로 한 번 울었을거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그의 위대함에 숙연해지는 날이다. 

그러나 나의 죽음은 내가 수락할 수 없는 방식으로 오지 못할 것이다. - p261


칼의 노래(우리 소설로의 초대 4)

저자
김훈 지음
출판사
생각의나무 | 2001-10-22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상태 하드커버 측면상,하단 때탐과 얼룩 있습니다 속간지부터 뒤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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