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새벽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유년의 친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J.M.바스콘셀로스, 동녘, 2003)

리브래리언 2015. 12. 6. 22:44

당신은 언제 철이 들었다고 느꼈나요? 

나는 언제 철이 들었을까? 

너는 언제 철들래? 라는 물음에 언제 "철은 무거워서 안들래요." 라고 말하고, "포항제철에서 너 찾는다." "왜요?" "철좀들라고" 와 같은 말도 안되는 우스개의 소재로나 쓰이는 "철"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의미있게 다가왔던 적이 있는가?


제목만으로도 이미 친숙한 책을 최근에 활동하고 있는 제주북클럽에서 지정도서로 읽게 되었다. 알고보니, 나는 이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었다. 제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이름들이 낯설었다. 어찌나 데면데면하던지, 읽는 동안 책 내용과는 별개로 나의 허세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다. 지정도서가 된 이유는 최근에 아이유의 노래와도 연관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아직 그 노래를 들어보지 않았으니, 나중에 들어보기로 한다. 




책은 제제의 슬픈 크리스마스로 시작된다. 제제는 5살의 장난이 지나친 어린아이이다. 모든 장난은 마음속에서 작은 새가 속삭여서 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아주 영리한 소년이기도 해서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글도 깨우치고, 노래도 부를 줄 안다. 장난이 심해서 그렇지,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는 무척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이다. 생각해보면 5살 꼬마가 내 말을 잘 듣고 영리하다면 그 어떤 아이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그 나이의 꼬마에게 의젓함만 있다면 그 또한 매력이 떨어지기는 매한가지 일 듯 싶다. 

태생적으로는 포루투칼인 아버지와 인디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6남매 형제들 중에 누나 한 명과 제제 만이 금발의 머리를 갖고 태어났다. "억센 털 러시아 고양이" 라는 별명에서만 봐도 형제들이 외모에 대해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고, 제제 역시도 그 부분을 좋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다. 


제제의 생활은 그리 넉넉하지 않다. 그럼에도 제제는 그런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렇게 느끼도록 저자는 5살 아이의 상상을 환상적으로 묘사해주었다. 막내 동생 루이스를 왕으로 부르는 것이나, 모든 사물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나 라임오렌지 나무와 소통하는 장면들은 그 때의 나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제제의 주변에는 소중한 몇몇이 있다. 힘겨운 삶을 안겨주는 집이지만 그 속에 한 줄기 햇살같은 "글로리아 누나",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려주는 "에드문드 아저씨", 노래의 재미와 경제적인 여유를 가져다준 "아리오발두 아저씨" 그리고 그의 영원한 친구이자 아빠, 뽀루뚜가, "발라다리스 아저씨" 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제제가 성장하는 데 있어 나름대로 의미있는 양분들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뽀루뚜가는 제제가 삶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절대적인 지지와 사랑을 아낌없이 준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역할은 역시 밍기뉴, 라임 오렌지 나무가 아닐까? 제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집안의 누구에게도 할 수가 없었다. 제제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만큼 여유롭지 않은데다, 루이스는 그의 말을 들을 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제제에게 밍기뉴 또는 슈르르까는 정말 소중한 대화 상대인 것이다. 다만, 우리는 독자로서 슈르르까가 제제의 다른 자아임을 알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말을 들어주는 한 사람"의 소중함을 느꼈던 것은 나뿐일까 싶었다. 뽀루뚜가가 소중했던 것은 말 뿐만 아니라 삶을 모두 의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 모든 것을 제제와 함께했던 한 사람, 제제를 한 명의 사람 또 한 명의 친구로 대해 주었던 유일한 사람, 그의 등장과 그 와의 시간들이 나에게도 진심으로 소중했던 이유는 그가 제제와 나누었던 사랑 때문이다. 아마도 조금 더 어렸을 때 읽었다면 나 역시 밍기뉴에 많이 감화 되었겠지만 말이다.